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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 대전지역 서민과 약자의 대부...김규복 목사 은퇴하다
[휴먼스토리] 대전지역 서민과 약자의 대부...김규복 목사 은퇴하다
  • [충청헤럴드=신수용 대기자]
  • 승인 2018.11.2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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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24일 오후 대전시 중구의 한 카페에서 참석자 모두 일어나 손을 잡고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를  합창했지만,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행사는 노동자, 빈민, 철거민, 외국인 노동자, 이주여성, 농민 등 이 시대의 소시민들과 함께 해 온 대전 대화동 빈들장로교회 김규복(66) 목사의 은퇴 감사 마당으로, 끝마무리를 이렇게 합창으로 함께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작은 자들의 벗, 길을 떠나다'라는 주제로 노동운동과 빈민운동, 시민운동에 온 삶을 바친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대전지역 동지와 후배들이 마련한 자리다.

대전지역 노동자, 빈민, 철거민, 외국인 노동자, 이주여성, 농민 등 이 시대의 소시민들과 함께 해온 대전 대화동 빈들장로교회 김규복(66) 목사(사진 맨왼쪽)가 은퇴한다. 24일 늦은 오후 대전시 중구 한 카페에서 열린 김 목사의 은퇴 감사 마당행사[사진= 신수용 대기자]
대전지역 노동자, 빈민, 철거민, 외국인 노동자, 이주여성, 농민 등 이 시대의 소시민들과 함께 해온 대전 대화동 빈들장로교회 김규복(66) 목사(사진 맨왼쪽)가 은퇴한다. 24일 늦은 오후 대전시 중구 한 카페에서 열린 김 목사의 은퇴 감사 마당행사. [사진= 신수용 대기자]

그는 인사말에서 "은퇴라는 말은 그동안 생각하지도 못했다. 평생 죽을 때까지 이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며 "그런데 마침, 하나님의 은혜로 병을 얻어서 계속해서 같은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세월 저는 '고문 같은 세월'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왔다"면서 "그것은 바로 이 땅의 민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와 함께한 '벗'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의 은인이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비록 교회를 떠나지만 민중의 곁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죽는 날까지 민중들과 함께 할 것"이라며 "그동안 너무 의욕이 넘쳐서 저의 건강관리를 전혀 하지 못했고, 예수를 닮는다는 무모한 욕심에 제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모든 것에 미안하고 또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했다.

지난 1971년 연세대 정외과에 입학한 뒤(졸업은 26년이 지난 후인 1997년)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 운동을 했던 그는 긴 수배생활과 두 번의 투옥을 경험했고, 갖은 고문으로 병을 얻기까지 했다.

대전의 빈들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목회활동을 하며 34년간 대전지역 서민과 약자를 돌보고, 살펴온 김규복목사가 24일 은퇴감사마당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신수용 대기자]
대전의 빈들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목회활동을 하며 34년간 대전지역 서민과 약자를 돌보고, 살펴온 김규복목사가 24일 은퇴감사마당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신수용 대기자]

이후 요양 차 내려왔던 대전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1984년 대전 대덕구 오정동 지하에서 첫 개척예배를 드리며 빈들 교회를 시작했다.

그는 공단지역  빈민들이 밀집해 있는 대덕구 대화동 빈들 교회 자리의 낡은 창고를 빌려 손수 예배당과 사택으로 고쳐가며 지금까지 34년 동안 목회를 해왔다.

그는 "바닥이 하늘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 항상 '낮은 곳', '작은 자'와 함께 했다. '노동상담소'를 만들어 노조 설립 지원활동과 노동 현장 지원활동을 했고, 산재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노동자들의 아픔을 함께 나눴다. '섬김과 나눔' 공동체를 만들어 힘들고 어려운 자들의 친구이자 가족이 되었다.

대전 용두동 철거민들이 겨우내 대전 중구청 앞거리에서 비닐을 덮고 노숙투쟁을 할 때, 그와 그의 교인들이 그들과 함께 매일 잠자리와 밥을 나누며 연대한 얘기는 유명하다. 이주노동자들이 매를 맞고, 쫓겨 날 때도 가장 먼저 달려간 것은 그였다.

대전 대화동 빈들교회 김규복 목사 은퇴 감사 마당이 24일 오후 대전시 중구의 한 카페에서 노동계, 시민단체, 이주노동자, 빈들교회교우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은 행사 안내 포스터(왼쪽)와 김규복 목사 약력.[충청헤럴드DB]
대전 대화동 빈들교회 김규복 목사 은퇴 감사 마당이 24일 오후 대전시 중구의 한 카페에서 노동계, 시민단체, 이주노동자, 빈들교회 교우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은 행사 안내 포스터(왼쪽)와 김규복 목사 약력.[충청헤럴드DB]

그는 대전에서 처음으로 '대전 외국인노동자와 함께 하는 모임'을 만들어 그들을 보살폈다. 외국인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정 등 이국땅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늘 함께했다.

또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대화동 지역 아이들과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며 보살폈다. 뿐만 아니다. 녹색연합을 시작으로 환경운동과 생명살림운동을 해왔다.

대전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대표로서도 지역사회의 현안 해결에 앞장섰다. 전국적인 활동도 그의 몫이었다. 우리 쌀 지키기, 4대강 사업 반대, 송전탑 반대 운동, 강정마을 지키기, 세월호 참사 대책활동, 도시재생 연대활동 등 대전을 넘어 전국 어디든 그의 투쟁은 쉼이 없었다.

그가 이제 빈들 교회 담임목사의 직을 벗었다. 법정 은퇴 연령보다 빠른 은퇴다.  김 목사의  뒤를 이을 허연 목사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행사에서는 김 목사의  삶을 되돌아보는 '영상 상영'과 '약력소개', '노래와 이야기 마당'이 진행됐다. 박홍순 대전 민예총 사무처장과 김창근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지도 위원, 김옥연 경인여대 교수 등이 김 목사와의 일화를 소개한 뒤 '사랑일기', '심장에 남는 사람', '이 세상 사는 동안' 등의 노래를 부르며 지난 날의 헌신적 활동에 감사했다.

대전의 빈들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목회활동을 하며 34년간 대전지역 서민과 약자를 돌보고, 살펴온 김규복목사가 24일 은퇴감사마당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신수용 대기자]
대전의 빈들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목회활동을 하며 34년간 대전지역 서민과 약자를 돌보고, 살펴온 김규복 목사가 24일 은퇴감사마당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신수용 대기자]

빈들 교회 교우들과 이주여성 정다희 씨는 각각 '민중의 아버지'와 '만남'이라는 곡의 노래를 불렀고, 정의당 대전시당 밴드 '파르티잔'은 '걱정하지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로서 김 목사의 앞길을 축복했다. 시 낭송도 이어졌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이성우 위원장은 '스스로 길이 되다-김규복 목사님 은퇴식에 부쳐'라는 축시를 통해 김 목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위원장은 축시에서 "가난이 축복이고 고난이 영광이며/ 적은 것이 소중하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 예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쉬워도/ 말씀에 따라 한결같이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남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보다/ 가르친 대로 자신이 사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기도만 하기보다/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오신 김규복 목사님"이라고 했다.

대전 대화동 빈들교회 김규복 목사 은퇴 감사 마당이 24일 오후 대전시 중구의 한 카페에서 노동계, 시민단체, 이주노동자, 빈들교회교우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은 김 목사와 가족이 행복이란 노래로 답하고 있다.[사진= 신수용 대기자]
대전 대화동 빈들교회 김규복 목사 은퇴 감사 마당이 24일 오후 대전시 중구의 한 카페에서 노동계, 시민단체, 이주노동자, 빈들교회교우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은 김 목사와 가족이 행복이란 노래로 답하고 있다. [사진= 신수용 대기자]

그러면서 "오병이어가 성서 속의 기적이 아니라/ 우리 뜻과 힘 모아 이루는 해방 세상이라고/ 길을 만들고 길을 다진 목사님께서/ 이제 스스로 길이 되어 더 크고 넓은 곳으로 가십니다/ 바닥이 하늘이고 빈들이 희망이다/ 당신의 길을 밟아 우리 지금 빈들로 갑니다"라고 그의 길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김 목사는 답사로 가족들과 함께 '행복'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는 노래 가사에서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라고 느낌을 전했다.

이어 노동계와 시민사회, 갑천도안 친수구역 주민, 종교계 등 다양한 분야의 대표자들이 그에게 감사패와 표창패를 전달하며 은퇴를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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