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충청헤럴드 대표이사.발행인(전 대전일보 대표이사.발행인)]](/news/photo/201812/8699_11904_83.jpg)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특(特)’자를 좋아하는 나라가 있을 까.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연전에는 몇몇 학교에서는 ‘특별반’, ‘특수반’이 있었다. 여기에 ‘특별활동’,‘특강’도 낯설지 않다. 식당에 가보면, 음식에 ‘특대’, ‘특식’이 있고, KTX나 호텔, 병원에도 ‘특실’이 운용된다. 일반기업마저 ‘특별 보너스’, ‘특진’, ‘특채’가 있다. 군부대에 ‘특전사’,‘특공대’,‘특수훈련’,‘특별휴가’가 있다.
법원에는 ‘특별재판부’가 꾸려지기도 한다. 검. 경찰 등에도 ‘특별검사’, ‘특수부’, ‘특별감찰’, ‘특별조사’, ‘특명’이, 외교부에는 ‘특임대사’, 정부나 국회에도 ’ 특별법‘, ‘특별위원회’가 버젓이 있다. 뉴스에도 ‘특보’가 있다. 지금은 활자를 뽑아 쓰지 않지만 과거에는 제일 큰 활자를 ‘특호 활자’를 쓴 제목의 신문이 나왔다. 시중의 마트에도 고무장갑과 김장봉투에는 가장 큰 상품을 ‘특대’라고 쓰여 있다.
모두 특혜를 뜻하는 것이다. 그 속에는 평범한 이나, 평범한 임무와 구분을 짓는 차별이 있다. 일반과 전혀 다른 권한과 대우, 지원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시된 지 오래다.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김대중(DJ) 국민의 정부 때 그런 아이디어를 냈다. 진정 국민의 정부가 되려면 이 사회에서 ‘특(特)’자만 없애도 성공할 것이라고 말이다.
앞서 보통사람의 시대를 표방한 노태우,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YS) 정권도 마찬가지다. 이전 의장은 노 전 대통령이나 YS에게도 같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랬지만 이들은 당선의 기쁨에 취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며 아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원인 김태우 검찰 수사관의 폭로가 연말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검찰로 복귀한 김 수사관이 여권 인사들의 첩보를 내부 보고한데 따른 ‘보복’을 주장하며, 폭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이 사라져야 평범해지는 나라.
여권 중진 A 씨의 지인 채용 청탁과 함께 1000만 원수수 의혹에 보고서를 썼다가 자기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민간 은행장 등의 사찰의혹, 정치인 A 씨와 관련 부처의 개헌 동향, 공기업 사장과 전직 여권 의원 간의 특혜 커넥션……. 등 연일 폭로되고 있다.
청와대는 김 수사관은 ‘비위행위로 복귀시킨 것뿐’이라며 ‘보복성 인사’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김 수사관이 언론에 밝히는 폭로 내용들은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 14일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쇄신안을 공개했다. 기존의 ‘특별감찰반’이라는 명칭을 ‘공직감찰반’으로 바꿨다. 여태까지 검찰 출신, 경찰 출신 위주였다면 이제 감사원, 국세청 등 다른 기관 출신도 포함하겠는 것이다. 검찰. 경찰중심의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특별’이란 이름을 도려냈다. 대신 그 자리에 ‘공직’이란 이름으로 대체했다. ‘특별’이란 이름이 특별하게 들리기 때문이라는 여권 인사의 해석이 그럴듯하다.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으로 꾸려 한 특정 조직이 3분의 1을 넘지 않도록 상호 견제하는 기능으로 제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야권은 이를 맹비난한다. 특별이란 이름만 바꿨지 쇄신의 의지가 없다고 했다. 감사원, 국세청까지 끼워 넣으면 DJ정부 때 ‘옷 로비 사건’ 때 없앴던 사직동 팀으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국 민정수석 교체가 곧 쇄신이라는 주장도 펴고 있다.
그렇다면 ‘특별감찰반’ 같은 청와대 조직이 과거에는 없었을 까. 그렇지 않다. 특수대로 불리기도 하고 사직동 팀이라고 하기도 하고, 별관 팀이라고도 했다.
원래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이 조직은 박정희 정권 때 생겼다. 충남 출신 정석모 치안본부장이 만든 '악명' 높은 '치안본부 특별수사대' 가 그 시초다. 이 특수대는 김현옥 내무장관이 유신 직전인 1972년 6월 정 본부장에게 "미국의 FBI와 같은 조직을 만들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다.
특수대는 박 대통령의 하명사건을 취급했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비위에 대한 정보수집, 기업인들의 외화 해외도피 등 청와대의 직접 특명사항을 수사했다. 그러니 힘이 막강했다. 권력남용 등 집권자들에 대한 비판이 일자 김치열 내무장관가 이를 쪼갰다.
당시 김 장관은 청와대 특명사건을 맡는 '특수 1대'와, 치안본부 자체 기획수사를 담당하는 '특수 2대'로 조직을 나눴다. 별도의 이름으로 별도의 사무실에서 일했다. 암암리에 이름도 붙여졌다. 그게 '사직동팀' 과 '신길동팀'이다.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선 이후 합동수사본부 5국으로 잠시 통합, 더욱 악명을 떨쳤다. 김종필, 이후락 씨 등 3 공화국 주여 정치인 고문, 80년 '10.27 법난'때의 승려 고문 등으로 유명해졌다. 여기에다 83년에는 한일합섬 김근조 이사를 고문하다 뇌출혈로 숨지며 일반에게 알려졌다. 폐지론이 높아가자 80년대 말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개칭되면서 조직의 변화가 생겼다. '특수 2대'는 경찰청 공식 편제로 흡수됐다. 경찰청장 지휘 하에 청와대 사칭 사건, 공직기강 등을 담당하게 됐다. 특수 2대의 명칭도 '특수수사과'로 바뀌었다. 그러나 특수 1대인 사직동 팀은 YS정권을 거쳤어도 그대로 이었다. 주로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관리 및 첩보수집을 담당했다. 공식 명칭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이지만 종로구 사직동 안가에서 은밀히 작업을 했다고 해서 '사직동팀'으로 불렸다. 사직동 팀은 청와대의 특명에 따라 정보수집 및 수사를 벌였다. 정식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서울지검 특수부나 대검 중수부 경찰청 특수수사대 등에 자료를 넘겨졌다. 그러다가 1997년 대선 당시 'DJ 비자금 수사' 관련 파문이 확산된 뒤에야 그 실체가 수면 위로 올랐다. DJ가 집권한 뒤는 1999년 '옷 로비' 의혹 사건 내사, 한빛은행 대출 관련 비리 등에서의 권력남용 등으로 존폐 여부가 이슈화 됐다.
-권위주의 정권의 막강한 파워. 그 잔재들의 씨앗.
사직동 팀은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직속으로 있었다. 그러나 2000년 1월 청와대 법무비서관실이 폐지되면서 사직동 팀의 기능이 민정수석실에 이관되었다. 결국 청문회까지 벌인 옷 로비 사건 직후인 2000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로 사직동 팀은 폐지됐다.
세월이 지났지만 사직동 팀은 이름만 바뀌었지, 특명사건을 다뤘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정수석실에서 이 조직을 관리했다.
11년간 청와대 출입기자일 때 보면 그 조직은 애매한 일을 했다. 주된 업무가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민정수석 등의 특명 사안과 통상적인 업무가 섞여 있다. 명확하게 업무의 경계선을 구분하기 어려워 보였다. 검사나 경찰관이 해야 할 일을 청와대가 왜 저 일을 하지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이것이 지금의 연말 정국의 핫이슈인 ‘특별감찰반 파문’이다. 특별감찰반원으로 근무해온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가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이미 ‘진실 공방’을 넘어 정치 쟁점으로 비화했다. 그의 주장과 논란이 증폭되는 것 같아 안타깝고 우려스럽다.
언론과 국민이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특별감찰반’은 현 청와대의 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권력과 맞대어 있는 사안이다. 때문에 그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옳고 그름의 처리에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김태우 수사관이 터뜨리는 잇단 폭로 하나하나가 의혹이 불거져서다. 그의 폭로 한마디에 따른 여론은 절반으로 갈라지고 요동치는 게 지금 상황이다. 여기에 논란이 고소·고발 전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접합점이 없이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고소·고발뿐이다.
김 수사관의 폭로가 언론에 쏟아지고, 청와대는 이미 김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뿐만 아니다. 여권은 김 수사관의 폭로에 공직자로서 무책임한 처신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나아가 그가 지인의 비리 수사에 개입하고 감찰 대상 기관으로의 ‘셀프 취업 시도’ 등 비위 혐의로 감찰에다, 수사를 동시에 하고 있다.
자유 한국당도 여기에 맞불, 민간인 사찰 의혹을 들어 조국 민정수석과 임종석 비서실장 등을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그의 첩보보고서 목록을 공개하며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을 지시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광범위한 민간 사찰 의혹이다. 전직 총리 아들의 개인사업 현황과 민간 은행장 동향 등 불법 정보 수집 여부다. 청와대는 이미 내부적인 보고 절차 과정에서 걸러져 폐기된 내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 김 수사관의 업무 밖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경고한 바 있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사안의 실체가 불분명한데도 정치적 논란과 공방만 확대는 되는 건 유감스럽다. 모두가 미숙하고 무모해 보인다.
사건의 의혹이 증폭되다 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특감반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천정배 민주 평화당 의원은 "청와대 감찰반은 그 자체가 권력남용과 인권침해 가능성이 큰 조직이다. 누가 이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것인가 “하고 반문한다.
그는 "만일 청와대 특감 반원이 아니고 검찰청의 수사관이라면, 폭로가 있다 해도 청와대나 대통령에게 직통으로 부담이 생겼겠느냐 “라며 "청와대 감찰반은 군부독재 대통령 때의 국민 억압적 발상에서 만들어졌던 기구이니 아예 없애자”라고 제안했다.
-청와대의 결자해지정신이 필요.
문제는 청와대다. 무엇보다 정권의 핵심 보루인 청와대 민정 수석실이 진흙탕 싸움의 진원지로 변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그런데도 일부 의혹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안이하게 대응했다. "모두 해명한 일"이라거나,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말하는 등 감정적으로 대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청와대는 김 수사관의 여러 ‘문제 행위’를 방치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곧 ‘화’를 키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거 정권 출신인 김 수사관을 기용해 불투명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도록 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
법적 조처와 별개로 대응이 적절했는지 돌아보고 의혹을 투명하게 밝히는데 주력해야 한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기에 어떤 경우든 비리 의혹에 눈 감아서는 안 된다. 사찰 의혹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안 된다는 각오로 내부를 다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인사 검증과 특감반 활동 등에서 실수가 없는지도 따지고 살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사태가 청와대의 감찰 범위가 모호해서라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7-80년대 ‘사직동팀’의 관행이 아직도 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일단 불거지면 민간인 사찰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요즘 청와대의 해명들을 보면 답답하다. 문제가 불거지기 전 특별감찰반원을 전원 복귀시킬 때부터 소상하게 이를 설명했어야 했다. 왜 소상히 밝히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 의혹의 핵심은 야당과 보수 언론의 주장대로 청와대 윗선이 민간인 정보 수집이나 사찰이 이뤄졌는 지다. 그것도 김 수사관의 주장대로 조직적으로 지시됐는가 여부다.
명명백백한 진실규명을 한 뒤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불법과 탈법 있는 데도 적당히 덮는다면 더 큰 화가 될 수도 있다. 편을 갈라 벌이는 정치공방도 자제되어야 한다. 김 수사관의 주장을 꼼꼼히 살펴 ‘불법관행’의 사각(死角)이 있다면 이를 고칠 방안도 마련돼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