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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하기
스스로 하기
  • 박찬용 교육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0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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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용 교육 칼럼니스트, 대전용전초등학교 교장

아기를 키우다 보면 혼자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 시기가 온다. 아기가 밥을 먹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여 손에 숟가락을 쥐어 주게 된다. 그러면 아기는 신이 나서 숟가락으로 밥을 퍼 먹게 되는데, 지켜보고 있으면 가관이다. 밥은 거의 다 바닥에 흩어지고, 얼굴 주위에는 밥풀로 범벅이 되며, 입에 들어가는 밥은 몇 알이나 되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아기는 떨어진 밥을 숟가락으로 다시 푸고, 입 주변에 묻어 있는 밥풀은 손으로 입에 넣으며 신나게 먹는다. 그런 아기를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어 당장 먹여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럴 때 부모가 아직은 혼자 먹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아기에게 밥을 먹여 준다면, 아기는 혼자 밥을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혼자 먹게 내버려 둔다면, 점차 흘리는 밥의 양이 줄어들게 될 것이며, 나중에는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먹게 될 것이다.

‘마지막 황제 부의’라는 영화를 보면 황국에서 시중만 받던 부의가 평민이 되어 생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혼자서 옷의 단추를 채우지 못한다. 시녀들이 옷을 입혀 주고, 단추를 채워 주어 스스로 채워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른이 되었어도 채우지 못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글짓기나 그리기 등의 여러 가지 대회를 개최한다. 방학 동안에는 과제물을 제시하여 우수한 과제물을 제출한 학생에게는 시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직접 대회를 개최하여 작품을 수합하면 문제가 없는데, 가정에서 해 오라고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학생의 실력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작품을 제출하는 것이다. 본인이 직접 하지 않고 누가 대신 해줬을 거라는 심증은 가지만,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시상하게 된다. 글짓기 대회에서 자녀가 직접 글을 쓰지 않고, 부모가 대신 써 줘서 상을 받게 되었다면, 그 상이 의미가 있을까?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것은 부모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대신 써 주는 부모가 상당 수 있다. 방학 과제물도 대신 작성해 주는 부모가 있다. 심지어 자녀는 학원에 보내고, 숙제를 대신 해 주는 부모도 있다.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2008년에 6학년 담임할 때의 일이다. 한 남학생이 학업 성적이 우수했고, 글짓기와 그리기 실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잘하는 만능의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국어 시간을 활용하여 글짓기 대회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그 학생은 글짓기의 시작도 못하고 앉아 있기만 했다. 구상하다가 시간 다 가겠다고 빨리 쓰라고 독촉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 학생은 두 줄 쓴 작품을 제출했다. 국어 쓰기 책을 살펴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이 전에 제출했던 글짓기 대회 작품은 그 학생이 쓴 게 아니었다. 그리기 작품과 방학 과제물도 그 학생이 직접 한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학생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학원에 다니며 공부만 했고, 나머지는 어머니와 누나들이 해 주었던 것이었다. 그 학생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고,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 찼으며, 친구들과 자주 다퉜다. 어머니는 아들을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들었고, 어머니가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살아가는 그 학생의 앞날이 걱정스러워 어머니와 상담을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게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글짓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 어떻게 하는지 시작조차 하지 못할 때는 조금 도움을 주는 정도였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질과 능력대로 스스로 한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상을 받으려고 매달릴 필요가 없다. 무슨 일에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지금 당장은 상을 받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상은 더욱 크고, 값질 것이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하루 생활 계획표를 작성하도록 했다.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쓰고, 시간을 정한 다음, 적당한 시각에 배정하면 되었다. 이제 막 1학년에 입학한 아이한테 스스로 생활 계획표를 짜라고 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되지만, 자기가 지켜야 할 일을 자기 스스로 정한다는 것이 의의가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 보는 시간, 컴퓨터 하는 시간, 노는 시간 등을 많이 배정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는데, 의외로 그런 시간을 너무 적게 배정하여 놀랐다. 그래서 너무 무리하게 계획을 세워 놓고, 지키지 않는 것 보다는 느슨하게 계획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노는 시간을 대폭 늘려 주었더니 꽤나 좋아하였으며,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초등학교 중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알람시계를 사 주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하였다. 부모가 교직에 있고, 각종 모임이나 대학원 수강 또는 교과 연구회 활동 등으로 인해 귀가 시간이 늦을 때는 아들 스스로 밥을 차려 먹었다. 중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집에서 시키지 말고, 음식점에서 사 먹도록 했다. 밤에 아이가 혼자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아들과 대화를 통해 충분히 소통하며 이해를 시켰기 때문에 불평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직장에서 회식이 있을 때, 어떤 여선생님의 경우 집에 들러서 중고등학생인 자녀에게 밥을 차려 주고 온다고 할 때면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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