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도가 지난 22일 도금고지정심의위원회를 열고 공개경쟁에 응모한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 3개 은행을 대상으로 심의한 결과, 1금고에 NH농협은행을 2금고에 KB국민은행을 각각 선정했다. 지난 2000년부터 2금고를 지켜왔던 하나은행은 탈락했다.
1금고에 선정된 NH농협은행이 담당하는 일반회계와 지역개발기금은 올해 기준으로 6조7486억 원, 2금고 국민은행이 관리할 특별회계와 기금은 총 1조 31억 원에 달한다. 이들은 내년 1월 1일부터 2023년 12월 말까지 4년간 도 금고를 맡게 된다.
특히, 도는 이번 공모에 대해 “전국 최초로 탈석탄 선언 및 석탄 금융 투자 여부와 친환경에너지 전환 실적도 평가 지표로 채택, 기후변화에 중점 대응 중인 도의 의지를 담았다”고 밝혔다.
‘탈석탄 금고’는 향후 석탄발전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불참, 석탄발전 건설 특수목적법인(SPC)의 채권 인수 근절 등 ‘탈석탄 투자 선언’을 천명하고, 나아가 기존에 투자했던 석탄발전 투자금에 대한 단계적 철회도 이행해 나가는 은행을 뜻한다.
앞서 지난 6월 3일 실국원장회의에서 양승조 충남지사는 “석탄발전에 투자하는 석탄금융은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이자 인류가 누려야 할 삶의 질을 희생한 값으로 돈을 불리는 질 나쁜 투자”라면서 도 금고 지정에 탈석탄 금융 우대 방침을 선언했다.
당시 양 지사의 선언은 적게나마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약 2주 뒤인 6월 19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그린피스, 기후솔루션, 환경운동연합은 서울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남도의 사례를 들며 타 지자체도 탈석탄 지표 반영을 위한 금고지정 조례와 규칙 개정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탈석탄 선언’에 나선 금융기관도, 금고 지정에서 탈석탄 금융을 우대한 지자체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도의 탈석탄 유인 정책이 1차적으로 마주한 ‘현실적 한계’였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석탄금융 국가인 대한민국의 은행들로선 선택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충남도 금고지정 '탈석탄 지표' 발표…사회적 반향 미미
금고 지정에 ‘탈석탄 지표’를 반영하며 직접 행동에 나선 충남도. 이번에 선정된 두 은행은 탈석탄 금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국회 권미혁·장병완·김현권 의원실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기준 지자체 금고은행으로 지정된 12개 은행(농협, 신한, 우리, 국민, 하나, 기업, 대구, 경남, 부산, 광주, 전북, 제주은행 등) 가운데 전북과 제주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은 국내외 석탄발전 PF에 투자 중이며, 최소 7230억 원에 이른다.
이중 농협은 371억 원 규모로 8위, 864억 규모의 국민은행은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얼핏 중하위권으로 그나마 양호한 축에 속해 보인다.
하지만 농협과 100% 지분관계로 연결된 농협금융지주 계열사의 제반 석탄금융(한전자회사 회사채 인수, 민자석탄 대출, 석탄열병합 대출과 사채 인수) 규모를 합하면 2018년 8월 기준 4조2616억 원(조배숙 의원실 제공, 기후솔루션 분석)에 이른다. 국내 금융기관 중 가장 큰 규모다. 안인화력발전소 금융주선을 맡은 KB국민은행 역시 4조3000억 원에 달한다.

위에 언급했듯 탈석탄 금융을 선언한 은행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심사에서 탈석탄 지표는 실질적인 변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나마 “양 지사의 탈석탄 금융 우대 정책 선언 이후, 석탄화력 투자가 적은 부분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게 도의 해명이다.
도는 또 2차로 ‘제도적 한계’에 마주한다. 금고 선정을 위한 평가기준은 5개 항목(▲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 안정성 27점 ▲도에 대한 대출 및 예금 금리 20점 ▲지역 주민 이용 편의성 21점 ▲금고 업무 관리 능력 25점 ▲지역사회 기여 및 도와의 협력사업 7점)과 15개 세부 항목 등이 행안부 규정으로 정해져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도가 탈석탄금융 우대를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점수는 100점 중 2점뿐이었다. 결정적인 지표로 삼기엔 미미한 수치다. 다만, 이번 공모에 참가한 은행의 점수가 100점 만점 기준(총점)으로 농협 95.51점(1146.20점), 국민 93.78점(1125.40점), 하나 92.30점(1107.60점) 등의 순이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탈석탄 지표 2점이 순위를 바꿀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현실적·제도적 한계 불구, '나비효과' 기대하는 까닭
이처럼 충남도의 이번 탈석탄 금융의 지표반영은 현실적·제도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지사와 도에는 박수를 보낸다. 이 글이 그들의 시도를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계와 문제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치료를 위해선 정확한 진단이 우선이다.
<충청헤럴드>의 취재에서 충남도 역시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는 그럼에도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는데 의의를 뒀다. 심사 항목 중 도가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건 7점짜리 ‘지역사회 기여 및 도와의 협력사업’이다. 이 중 출연금이 차지하는 점수(2점)를 빼면 순수하게 도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건 5점에 불과하다. 이중 절반에 가까운 2점을 탈석탄 지표로 할애했으니, 도의 입장에선 '최선'이었다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상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농협과 국민은행은 4년 뒤 도 금고 재선정 시기가 돌아올 때까지 어찌됐든 석탄금융 투자에 적잖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단, 이를 위해서는 이들 은행이 금고 선정 이후 석탄화력에 투자하는 지 여부를 면밀히 따지려는 도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혹여 변수(정권 교체 등)로 1회성 이벤트에 그칠 수 경우도 배제할 순 없기 때문이다.
최근 금고지정을 앞두고 있는 경남도 역시 충남의 이번 시도에 영향을 받아 탈석탄 목소리가 일고 있다. 충남도의 이번 노력이 ‘상징’에 그치지 않고 '나비효과'가 될 가능성에도 기대감을 갖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취재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기자에게 당부한 말을 전하며 글을 닫으려 한다.
“광역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도 하지 못한 ‘탈석탄’ 방향성을 금고 지정에서 사회적지표로 담으려고 한 노력에 의미가 있습니다. 성과는 미미할지 몰라도 기후환경 변화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