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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산 초사동 주민을 ‘님비주의자’로 몰았나
누가 아산 초사동 주민을 ‘님비주의자’로 몰았나
  • 안성원 기자
  • 승인 2020.01.31 11: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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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원의 ‘틈’] 과정의 ‘공정함’ 사라진 채 정의로운 결과만 강요하는 정부
31일 오전 충남 아산시 초사동 경찰인재개발원 진입로 앞 전경. 혹시 모를 사태에 경찰이 준비 태새를 갖추고 있다.

[충청헤럴드 아산=안성원 기자] 31일 오전 11시. 충남 아산시 초사동 경찰인재개발원 진입로 앞. 전운이 감돈다. 오후 12~1시 사이 중국 우환에서 송환된 첫 교민 그룹이 도착할 예정이다. 

전날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양승조 충남지사와 오세현 아산시장 등이 진입로를 막아섰던 주민들과 대화에 나선 끝에 겨우 설득을 했다. 하지만 아직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은 일부 주민들과의 혹시 모를 우발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경찰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앞서 29일 정부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 우한지역 송환 교민들의 격리수용장소를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을 확정 발표했다. 초사동 주민들은 격하게 반발했다. 30일 현장을 찾은 도지사와 행안부장관은 계란세례까지 받아야 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최초 천안에서 하루 만에 아산으로 바뀐 배경에 대한 의혹과 박탈감을 토해냈다. 또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들의 억울함, 그리고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던 여당 정치인들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우한 교민을 따뜻이 감싸줘야 한다는 피켓운동이 번지고 있다. 

SNS상에서 아산 시민 엄 모씨는 손 글씨로 ‘We are Asan. 고통과 절망 속에서 많이 힘드셨죠? 아산에서 편안히 쉬었다 가십시오’라는 피켓을 찍어 올리며 “저처럼 우한 교민들을 환영하는 아산 시민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이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고 동참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다. 국가적인 재난에 대의적으로 선진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움직임에 호응하며 초사동 주민들이 반대 농성을 그만둬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SNS에서 확산되고 있는 우한 교포 환영 피켓운동. [페이스북 갈무리]

반대하는 의견과 품어야 한다는 주장 모두 아산시민들의 목소리다. 그리고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지”라며 초사동 주민들의 울분에 공감하던 분위기는 어느 샌가 “이렇게 된거 받아드릴 수밖에 없지 않냐”는 수긍론으로 기울었다. 

상대적으로 초사동 주민들은 점점 님비((Nim By; Not In My Back Yard 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에는 이롭지 아니한 일을 반대하는 이기적인 행동)주의자로 비쳐졌다. 혼란스러웠다. 포용력을 보여준 시민의식에 반가웠지만, ‘이대로 흘러가는 게 옳은가’라는 찜찜함이 남았다. 

사실, 많은 언론에서 지적했다시피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이번 사태를 상대 정당의 공격용으로 적극 활용하면서 본질이 흐려졌다. 일부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단독 보도를 했던 <중앙일보>의 ‘천안반발에 밀려…’라는 자극적인 제목에 이어 언론들도 앞 다퉈 날 선 내용으로 보도를 이어갔다. 이 점은 기자 역시 반성하는 대목이다.

그럼 이 외에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초사동 주민들의 반대를 ‘님비’로 치부해야 하는 건가. 그들의 울분이 단순히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혐오’에서 비롯된 것일까?

기자는 결과의 ‘정의로움만’만 강요한 채 과정의 '공정함’이 사라진 실태를 언급하려 한다. 

30일 초사동 농성 현장을 찾아 발언하고 있는 양승조 충남지사(가운데)와 진영행안부 장관(양 지사 뒷편) 오세현 아산시장(오른쪽). [양승조 지사 페이스북 갈무리]

‘우한 교민도 품어야할 국민’이라는 대의는 좋지만, 초사동 주민들이 던지는 ‘왜 여기인가’라는 의문엔 답이 되지 않았다. 검토한 시설 어디며 그 기준과 주면에 대한 대응책은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 양 지사가 밝힌 “경찰인재개발원의 종합점수가 가장 높았다”는 설명이 전부였다. 

수용시설이 결정될 때 까지 초사동 주민은 물론, 아산시장과 충남도지사도 사실을 몰랐다.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선택만 있었을 뿐이다. 현 정부의 지방분권 혁신 의지를 의심케 한다. 이후의 대처도 진정성을 엿보기 어렵다. ‘안전함’을 내세웠을 뿐 ‘미안함’은 없었다. 강요받는 대의에 초사동 주민들의 서러움은 가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기회는 균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원칙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로 이전 정부에 실망해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적 재난 앞에 정부가 국민과 ‘공정한 과정’을 공유하는 건 아직 요원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여기에 시민들의 심부름꾼인지 당의 대변인인지 모를 지역 정치인들의 모습도 한숨을 부른다.

오죽하면 오세현 시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우한 귀국 국민 임시 생활시설 선정 과정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부분은 중앙부처와 지방정부 간 의사소통 없이 이뤄져 아산시민에게 충분한 설명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라고 토로했을까. 

납득할 만한 ‘공정함’ 없이 ‘정의로운 결과’만 강요하는 건 폭력과 다름없다.

 

‘틈’은 기자가 취재 현장과 현실의 사이에서 느낀 단상을 풀어놓는 코너입니다. ‘틈’이라는 이름은 ‘간격’을 뜻하는 단어 본래의 사전적 의미와 ‘통하게 하다’라는 뜻의 ‘트다’의 명사형을 칭하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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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2020-01-31 12:01:39
배방으로 갔다면 피켓을 들지 않앟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