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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정말 '피닉제'가 될까
이인제, 정말 '피닉제'가 될까
  • 신수용 충청헤럴드 대표.편집인(전 대전일보 대표.발행인.사장)
  • 승인 2018.04.03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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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용 충청헤럴드 대표.편집인(전 대전일보 대표.발행인.사장)
신수용 충청헤럴드 대표.편집인(전 대전일보 대표.발행인.사장)

그리스 신화에는 포이닉스(Phoenix.피닉스)가 두 명 나온다. 한 명은 페니키아라는 지명에 이름을 준 왕이다. 또 다른 한 명은 아킬레우스의 스승으로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영웅이다. 이 신화에는 두명 모두 같은 이름의 '불사조=피닉스'로 불린다.

포이닉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와 귀국하다가 숨을 거둔다. 그러나 포이닉스는 자기 몸을 불태워 그 재에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전설적인 새다. 고대 이집트의 태양 숭배에 나오는 상상의 새 베누(Benu)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많다.

포이닉스는 세상에 단 한 마리밖에 없는 새다. 이 새는 새끼를 낳지 않는대신 홀로 500년을 살다가 죽는다. 하지만 때가 되면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나라)에 있는 태양 신전으로 간다. 새는 향나무를 쌓은 제단으로 날아가 날갯짓으로 불을 붙여 제 몸을 불사른다.

그 뒤 다 타고난 잿더미 속에서 다시 포이닉스가 태어난다. 포이닉스는 매일 같이 활활 타는 불덩이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아 꺼지기를 반복하는 태양을 상징한다. 순 우리 말로 불사조, 곧 피닉스라고 부른다.

-당 권유 뿌리치지 못한 이인제, 불사조 닉네임 재현할까

자유한국당 이인제 고문은 '피닉제'로 불린다. 불사조 피닉스와 이인제를 합쳐 '불사조 이인제'란 의미로, 정치부 기자들은 그렇게 부른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떤 시련이나 불가능에도 살아나는 정치인 이인제였기 때문이다. 딱 한번 지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때 초선인 더불어 민주당 김종민 의원에게 진 것 빼고는 어지간한 선거에서 살아남았다.

그런 이인제 고문이 3일 국회 정론관에서 6.13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충남도지사 후보를 수락했다. 홍준표 대표와 김성태 원내대표, 홍문표 공천관리위원장 등 당 지도부와 이명수·김태흠·정진석·성일종 등 충남 국회의원들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이다. 충청의 정치맹주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그를 천거했다.

이 고문은 홍 대표의 출마 요구에 “승리를 위한 하나의 밀알이 돼 모든 것을 쏟아 붇겠다”며 이를 수락했다. 그는 “고향인 충남 도민들이 기회를 주신다면 충남을 제일 역동적이고 젊은 지방으로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홍 대표는 "이 고문은 JP 이래 충청도가 낳은 가장 큰 인물”이라며 “이 고문께서 고향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는 각오로 출마를 결심했다"고 한껏 띄웠다.

‘피닉제’ 이인제가 살아나 부활할 것인지, 아니면 ‘피닉제’란 이름으로 그칠지는 두 달여 후에 결판 난다.

같은 고향 후배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성스캔들'로 낙마하면서, 그에겐 부활의 기회가 됐다. 안 전 지사는 이 고문의 정적이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신과 같은 존재여서 이번 선거는 의미가 남다르다.

그렇다면 ‘피닉제’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논산중에서 천재소리를 들었으나 돈이 없어 서울 경복고에 합격하고도 고민에 빠진다. 그때 그를 돕기위해 논산출신 김 모 변호사(현 이 고문의 부인 김은숙씨의 작은 아버지) 등이 장학회를 설립, 경복고와 서울대법대에 합격한 뒤 1979년 21회 사시에 합격해 대전지법판사로 법조인의 길을 걷는다. 노무현 판사도 이때 만난다.

-이인제 ,YS영입으로 정치입문…광주청문회 유명세

그래서 그는 판사, 6선 국회의원, 노동부장관, 경기도지사, 15대-17대 2번의 대선 출마경험과 국민신당과 선진통일당 대표, 다보스포럼 특사, 새누리당 노동선진화시장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긴 정치생활만큼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 고문은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1988년 영입하면서 법복을 벗고 통일민주당에 입당, 제13대 국회의원(경기도 안양)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그가 널리 알려진 것은 당시 노무현 의원과 함께 '광주청문회'에서 송곳 질문과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3김의 부활과 함께 그는 재선 국회의원이 되고 1933년 노동부장관으로 발탁된다.

그가 ‘피닉제’로 불려지며 험로를 걷게 된 것은 1995년 경기지사로 출마하면서부터다. 당시 불리하다는 평 속에도 경선에서 승리한 뒤 초대 민선 경기도지사로 당선됐다. 정치입문에서 경기도지사까지 실패 없이 달려온 그는 대선주자 반열에 오르자 97년 신한국당 대통령 경선후보로 출마했다.

이때 그는 약속도 저버리는 정치인, 믿지 못할 사람이란 오명을 쓰게된다. 이회창 후보에게 경선에서 패배하자, 경선 결과에 승복하겠다던 약속을 깼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아들 병역문제가 불거지면서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치자 경선에 불복하고 독자출마를 감행한 것.

신한국당 탈당 후, 경기도지사 사퇴,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뛰어드는 바람에 이전 소속 정당인 한나라당은 강하게 반발하며 그를 깎아내렸다. 그의 돌풍으로 위기감을 느낀 이회창,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이 고문에 대한 견제에 들어갔다. 결국 제15대 대선에서 그는 19.2%의 득표, 3위로 마무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에게는 부정적인 평가가 여전하다. 이회창 후보 측은 다 이긴 선거를 '이인제가 판을 깨고 뛰쳐나가는 바람에 김대중에게 대권을 넘겼다'고 맹비난했다. 여기에 영남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은 "충청도는 DJP(김대중+김종필)연합에다 이인제까지 진보에 기여했다"는 공격을 받아야했다.

이 고문은 이후 정치 방랑자가 됐다. 그는 입당, 탈당을 반복하게 된다. 이 고문은 이런 비난에 '신념에 따른 결단'이라고 맞받았다. 그뒤 DJ(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들어갔다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하자 또 탈당을 한다.

-경선불복, 철새정치인 등 부정적 이미지도 넘어야 할 산

​그는 한때 JP가 이끄는 자민련에 입당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다 역풍을 맞는다. 역풍은 자민련의 총선 대패로 나타났다. 이에 JP는 정계은퇴, 이 고문은 탈당했다. 이후 자민련 탈당파가 창당한 충청정당 국민중심당에 입당했지만 다시 탈당하고 민주당으로 복당한다.

이어 '잦은 당적변경과 개혁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18대 총선 때는 공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에 반발한 이 고문은 통합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그래서 그를 ‘경선 불복자’, ‘보수 분열자’, 심지어 ‘정치철새인’으로 부르는 이도 적지 않다.

또 정치적 불행도 그치질 않았다. 1997년부터 최근까지 어림잡아보니 무려 16번이나 당적을 옮겼다.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돌고 돌아 지금은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거친 자유한국당에 안주한 것이다.

​그런 그가 오는 6.13 지방선거에 출마를 한다.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피닉스의 모습이 될지, 1997년 대선 때 '제2의 박정희'라는 이름을 다시 찾아올지, 반대로 노욕(老慾)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를 그리워하는 이도 있지만 3일 아침뉴스를 보고 '아니 이인제가 정치은퇴를 안했어? 또 나와?'하는 이도 적지않다.

​상대인 더불어 민주당은 충남지사 후보로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 중도에 사퇴했으나, 복기왕 전 아산시장과 양승조 4선의 국회의원이 잰걸음을 하고 있다. 이들은 수년 째 충남지사를 목표로 두고 준비해왔다.

그는 인물난에 허덕이는 홍준표 대표 등 한국당 지도부에 떠밀린 느낌이다. 당초 애초 정진석·이명수·홍문표 국회의원이 거명됐으나 모두 불출마를 선언했다. 때문에 이 고문에게 매달린 당 지도부의 충남지사 출마 권유에 한 달여 고민을 해왔다.

당은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함께 이 고문에게  충남지사 출마를 강력히 권했다. 이 고문은 한때 6.13 충남 천안 갑 국회의원 재선거로 거명되기도 했다. 이런 저런 악조건 속에 그는 '피닉제'의 신화를 그리고 있다.

이번 선거 역시 안희정 쇼크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충청권 지지율이 5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모를리 없는 그가 "당의 어려움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당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당인의 도리"라고 외쳤다. 그의 부활이 될지, 그 반대일지는 충남 유권자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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