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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후보 선택권을 가져갔을까?
누가 내 후보 선택권을 가져갔을까?
  • [충청헤럴드=안성원 기자]
  • 승인 2018.06.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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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원의 ‘틈’] 사라진 ‘정당공천제 폐지’ 약속…한 표의 힘으로 바꿔야
6.13지방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거대 정당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본보 공천 관련 기사 갈무리.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들은 막판 집중유세에 열을 올리고 있음에도,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이번 선거가 흥행에 실패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선거 초반부터 한결같은 더불어민주당의 독주와 좀처럼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기울어진 운동장’. 선거 하루 전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에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적 이슈로 지방선거의 정치이슈는 설 자리를 잃었다. 지방선거에 지역 이슈가 실종됐다.

이 같은 여당의 독주 현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무리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여당이 인기가 높다고 한들, 여당을 견제할 수단이 없는 구도가 된다면 정당정치는 기능을 잃게 된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딜레마를 호소하고 있다. 여당이 모든 칼자루를 쥐게 되는 상황은 막아야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후보를 찍자니 국정농단에 대한 뚜렷한 반성도 없이 한 표만 달라고 하는 그들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고민이 그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어떤 후보를 찍어야 할 지 물어오는 기자의 주변인들도 이런 하소연을 해온다. 

시장에 갔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대기업 상품만 진열돼 있다. 게다가 대기업들에 대한 믿음도 가지 않는다. 지금 유권자들이 딱 이런 심정이다.

지역 정치이슈 실종된 지방선거…중앙정치 논리로 좌우

충남 지역의 모 여당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갔을 때다. 중앙당의 거물급 정치인이 지원에 나섰다. 개소식 주인공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만 정작 이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 지, 무엇이 쟁점인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완성하려면 여당후보를 찍어줘야 한다, 힘 있는 여당 후보가 돼야 국비지원이 빵빵하다며 목청을 높인다. 후보가 곧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논리다.

또 여당 후보들의 공개토론회 불참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도 이번 선거의 특징이다. 토론회에 나가지 않아도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보이고 있으니, 굳이 나가서 상대 후보들의 공격에 시달릴 필요가 있겠냐는 심산으로 읽힌다. 유권자들의 알권리에 대한 책무를 뒤로 한 채 대통령과 여당의 인기 아래로 숨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것이 지역민의 일꾼을 뽑는 선거인가? 아니면 중앙정치를 향한 충성도를 검증하는 선거인가. 야당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여당의 독주를 막아달라는 중앙당의 당론만 되풀이 할 뿐이다. 여-야만 바뀌었을 뿐 지난 선거와 전혀 달라진 게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대신 문재인 대통령이 차지하고 있고, ‘힘 있는 여당 후보’ vs ‘여당 견제’라는 여·야의 대응논리도 판이하다. 

촛불혁명 이후의 선거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컸지만, 갈수록 극에 달하는 네거티브 공방으로 유권자들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오히려 선거문화가 퇴보한 느낌마저 든다. 야당 시절에 “바꿔야 한다”고 외쳤던 여당이, 손가락질 했던 그들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인다. 술자리에서 흔히 들리는 “결국 그 나물에 그 밥 아니냐”는 냉소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정당공천제로 사라진 선택권, ‘그 나물에 그 밥’ 바꾸는 투표돼야

왜 이렇게 된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자는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제’의 폐해를 지적하고 싶다. 정당공천제는 공정한 정당 시스템을 통해 유능한 지역인재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로 지난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부터 도입됐다. 그런데 솔직히 순기능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공천권을 쥔 지역구 국회의원의 줄세우기로 공천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선거는 ‘여당 깃발만 꽂으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주당에 후보들이 몰렸고, 우려했던 대로 충남도지사에서 시·군 의원까지 공천과정부터 내홍이 심했다. 경선 후유증을 털어냈다며 외치는 ‘원팀(One team)’이라는 의미가 ‘원(怨 원망할 원)팀’ 아니냐는 뼈있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이렇게 살아남은 후보들에게 소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역의 모든 게 당에 따라 여·야, 파란색-빨간색, 진보-보수 소모전의 희생양이 돼버린다. 누군가는 말한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겠냐고. 일리가 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여당 국회의원들도 기득권 수호의지는 다를 게 없었다. 인사청탁 혐의가 짙은 동료 국회의원들을 수사망에서 지켜냈고, 정당공천제 폐지 역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당선만 되면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던 후보들이 금배지를 단 뒤에는 소식이 없다.

스펜서 존슨(Spencer Johnson, 1938~2017)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Who Moved My Cheese?)’라는 책이 떠오른다. 창고의 치즈가 바닥났을 때 안일함에 젖은 채 머물러 있는 ‘헴’과 다른 창고에 더 많은 치즈가 있다는 확신이 없음에도 두려움을 떨치고 변화를 선택하는 ‘허’가 나온다. 정당공천제 폐지, 지역 일꾼에 대한 선택권을 되찾는 일도 다르지 않다. 한 표의 행동이 필요하다. 

역으로 이런 현실을 맞게 된 유권자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지방선거에서 겪은 피로감을 2년 뒤 있을 총선까지 기억하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집 앞 불법주정차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고 그 불편이 대통령의 탓도 아니라는 것을..

 

(본 기사는 특정 후보를 겨냥하거나, 선거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후보들의 노력을 폄하 하려는 의도는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틈’은 기자가 취재현장과 현실과의 사이에서 느낀 단상을 풀어놓는 코너입니다. ‘틈’이라는 이름은 ‘간격’을 뜻하는 단어 본래의 사전적 의미와 ‘통하게 하다’는 ‘트다’의 명사형을 칭하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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