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들도 사람인지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안을 취재할 때는 여러 고민거리를 마주하게 된다. 이럴 땐 흔히 말하는 ‘촉’이 필요하다. ‘촉’은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준다. 주로 취재원이 은폐하려는 기미가 보이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로 대응할 때 찾아온다.
그런 면에서 최근 기자가 지속적으로 취재를 진행 중인 충남도학원연합회(이하 도연합회)의 학원연수 위탁업무(본보 12일자 <충남도교육청, 학원연수 조사종결에 ‘봐주기' 논란>보도 등)도 ‘촉’이 온다.
처음 ‘촉’이 온 건 교육청 담당자의 ‘거짓말’이었다. 이 사안과 관련해 도교육청 담당자 A씨와 처음 통화했던 지난 9월 20일. 기자는 “학원연수 위탁업무를 맡고 있는 도연합회가 불참 학원이 분납금(회비)을 납부하면 부정 출석처리 해주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런 정황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A씨는 “그런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부임해 파악 안 된 일이라 조사가 필요하다”며 확인 뒤 전화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곧이어 통화한 도연합회 관계자로부터 “전날 도교육청에서 제보를 받았다며 찾아왔지만 참석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이상이 없었다”는 전혀 다른 대답을 들었다. 둘 중 한명은 거짓말을 한 셈이다.
이에 다시 통화한 도교육청 관계자는 어렵게 거짓말을 시인한 뒤 “실은 연수불참 학원이 참석 명단에 있다는 민원이 들어와 어제(19일) 도연합회를 방문했다. 그러나 회비 납부에 대한 내용은 자세히 몰랐기 때문에 모른다고 답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동안 도연합회의 학원연수와 관련해 어떤 관리감독 행위도 하지 않았던 도교육청이, 문제가 터지고 첫 취재시도에 거짓대응을 했다? 처음엔 도연합회의 전횡에 몰두해 있었지만 이제는 충남도교육청까지 의심스럽다.
조작 의심 서류만 보고 ‘조사 끝’…도교육청의 탁상행정

기자의 ‘촉’에 대한 자극은 이뿐만이 아니다. 도교육청이 이 사안을 대하는 태도도 미심쩍다. 조사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도교육청은 본보 보도와 민원 접수 이후 도연합회의 학원연수 위탁업무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교육청의 조사 내용은 도연합회가 제시한 QR코드 등록표와 수기접수 현황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는 부정출석을 위한 서류였던 만큼 조작이 의심되는 자료다.
이 외에는 관계자와 전화한통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도연합회 회장은 예외였다. 민원이 접수되자 도연합회 회장이 제보자로 의심되는 학원장에게 가장 먼저 전화해 “당신이 민원을 넣었냐”고 추궁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제보자는 이 사실을 전하며 “피해를 각오하면서까지 제보를 했는데, 공무원은 보호는커녕 이토록 쉽게 상대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냐”며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결정적인 ‘촉’은 충남도의회를 대하는 도교육청의 태도에서 감지됐다. 오인철 교육위원장이 요구한 ‘천안지역 학원연수 QR코드 등록현황’을 보면 처음 도교육청이 제출할 때는 날짜가 없이 시간만 등록돼 있었다. 이 것만 본다면 모두 정상출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 위원장이 재요구한 원본 파일을 확인해보니 정반대였다. 정상참석자라고 제출된 명단의 77%는 연수날짜와 다른 날에 등록돼 있었다. 연수에 불참한 학원이 회비를 납부한 뒤 참석처리 한 상황을 얼마든지 의심할 수 있는 자료다. 그럼에도 ‘이상이 없다’고 결론 내린 도교육청의 판단을 납득하기 어렵다.
도교육청으로 번지는 ‘의심’…‘확신’ 되기 전에 대응해야
![천안지역 학원연수 QR코드 등록현황. 7월 7일 열린 연수임에도 제날짜에 등록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확연히 눈에 띈다.(왼쪽 파란칸) [충남도의회 교육위원회 제공]](/news/photo/201810/7213_10023_5237.jpg)
오 위원장은 “담당 직원이 도연합회에 속은 건지, 아니면 알고 그런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누가 봐도 QR코드는 현장에서 출석을 체크하기 위해 도입한 것인데, 며칠 있다가 입력된 건 합리적으로 조작가능성을 의심해 봐야 옳다. 도연합회가 거짓말하는 것 아니면, 교육청이 묵인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지 않겠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기자 역시 같은 생각이다. 내년부터 학원연수를 도연합회 위탁이 아닌 직영으로 전환하기로 한 도교육청의 결정이 불순해 보이는 까닭이기도 하다. 사안에 대한 조사보다는 덮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현 체제가 ‘이상이 없다’면서 직영으로 전환한다는 게 얼마나 모순된 행정인가. 직영 전환을 결정한 이상 이미 문제를 인정한 셈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부정출석 조작이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를 덮는데 급급할 게 아니라 자세히 밝히고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공무원이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교육청 관계자의 말도 변명에 불과하다. 교육청은 세금이 지원된 민간위탁 업무에는 감사권한도 갖고 있다. ‘봐주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면 기자가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교육청은 왜 못 구한단 말인가.
이대로라면 책임지는 사람 없는 공허함만 되풀이 된다. 잠시 몸을 낮춘 누군가는 잠잠해진 뒤 다시 권력의 칼자루를 휘두를 테고, 업계와 지역사회에서 매장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감수했던 제보자들은 낙인보다 더 무거운 상실감과 불신을 품은 채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도연합회를 향한 ‘의심’이 교육청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확신’이 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